나스타알리크와 페르시아 시: 서예와 문학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나스타알리크로 쓰인 페르시아 시를 볼 때 우리는 단순히 단어만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단어의 높이는 달라지고, 길게 뻗는 획은 화면을 가로지르며, 행은 때로 기울고, 글씨 사이에는 빈 공간이 남는다. 시는 읽히는 동시에 형태도 갖게 된다.
이처럼 오랫동안 함께해 온 관계 때문에 나스타알리크는 자주 ‘페르시아 시의 서체’라고 불려 왔다. 역사적으로 이해할 만한 표현이다. 많은 페르시아어 디반, 장편 운문, 선집과 서예 작품이 나스타알리크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스타알리크가 본질적으로 시적이라거나 처음부터 시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면, 역사적 증거가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나스타알리크와 페르시아 시의 관계는 하나의 단순한 원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페르시아 문학, 도서관과 궁정, 서적 제작 공방, 필사자, 책의 형식, 독립 서예 작품, 그리고 이후의 무라까(muraqqa')가 모두 이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여했다.
따라서 ‘왜 나스타알리크는 시의 서체인가?’라고 묻기보다 다음과 같이 묻는 편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페르시아 시와 나스타알리크는 역사 속에서 서로에게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는가?
본질적 속성이 아닌 역사적 관계
나스타알리크는 이슬람력 8세기 후반, 즉 서기 14세기에 역사적 이란의 여러 필사 중심지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증거는 이 서체가 어느 한 순간에 ‘발명’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을 보여 주지 않는다. 더 이른 필사본에서도 후대 나스타알리크와 가까운 특징이 나타나며, 필사본 중심의 연구는 시라즈와 타브리즈 같은 중심지들이 이 과정에 중요했음을 뒷받침한다.
전통적인 서예 서술에서 미르 알리 타브리지는 흔히 나스타알리크의 vazi', 즉 정립자로 소개된다.
이 표현은 후대 서예가들의 전문적 기억에서 그가 차지한 중요한 위치를 보여 주지만, 나스타알리크가 한 순간에 한 사람의 손에서 생겨났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미르 알리의 역할은 나스타알리크를 갑자기 무에서 만들어 낸 사람이라기보다 그 양식을 정리하고 정착시킨 인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같은 시기 시라즈 역시 활발한 필사본 제작 중심지였다.
이 작품들은 나스타알리크와 시 사이의 초기 관계를 보여 주지만, 시가 이 서체가 생겨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페르시아어는 나스타알리크 이전에도 다른 서체로 쓰였으며, 나스타알리크 역시 이후 시에만, 더 나아가 페르시아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시와 나스타알리크의 관계는 깊었지만 배타적이지 않았다.
책의 세계 속 시
나스타알리크가 왜 페르시아 시와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글자 자체에서 조금 벗어나 이 작품들이 만들어진 세계를 볼 필요가 있다.
고급 필사본은 대개 한 사람의 작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필사자가 글을 썼지만, 그 옆에서 장식가, 화가, 선을 긋는 장인, 제본가와 다른 예술가들이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 전체를 서적 예술이라고 부른다.
궁정과 왕실 도서관, 기타 후원자들은 필사본 주문, 재료 확보, 예술가 집결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나스타알리크의 확산을 단순히 ‘형태가 시에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우선 책이 주문되어야 했고, 필사자가 훈련받아야 했으며, 텍스트가 제공되어야 했고, 읽거나 보관하거나 선물하기 위한 필사본이 제작되어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물질적 구조 역시 서체 역사의 일부다.
책의 형태조차 시에 영향을 주었다
필사본의 크기와 형식도 시가 화면에 배치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술탄 무함마드 누르가 이슬람력 905년 / 1499–1500년에 쓴 Anthology of Persian Poetry in Oblong Format (Safina)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 필사본은 좁고 길쭉한 형태이며, 여러 시인의 짧은 가잘을 다양한 색과 장식의 종이에 담고 있다.

길쭉한 책의 형식은 행의 길이와 시의 배치 방식을 바꾼다.
따라서 시와 나스타알리크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글자 형태만이 아니다. 종이의 크기와 책 자체의 구조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
다만 페이지 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근거 없이 각 색이 가잘의 특정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과 우리가 부여하고 싶어 하는 의미를 구분하는 편이 좋다.
필사본에서 독립 서예 작품으로
필사본에서 시는 더 큰 텍스트의 일부다.
한 구절 뒤에 다음 구절이 이어지고, 한 페이지 역시 앞뒤 페이지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몇 구절이 독립된 서예 작품으로 쓰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 작품은 독립적인 서예 단위가 될 수도 있고, 훗날 다른 맥락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무라까에 들어갈 수도 있다.
무라까는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만들어진 서예 작품과 이미지를 함께 모은 앨범이다.
필사본에서 독립 작품으로의 변화는 시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책에서는 필사자가 수백, 수천 행을 지속적인 질서 안에 배치해야 했다.
하지만 독립 작품에서는 몇 줄의 시가 훨씬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펜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고, 행이 비스듬해질 수 있으며, 글씨 사이에 더 넓은 공간이 생길 수 있었다.
이슬람력 1017년 / 1608–1609년의 미르 에마드 작품은 이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화면에서 행의 크기는 서로 같지 않고, 방향도 달라지며, 빈 공간은 구성의 적극적인 일부가 된다.
페이지는 더 이상 긴 텍스트가 계속 이어지는 용기만이 아니다.
몇 줄의 시 자체가 독립적인 구성의 주제가 된다.
이 변화를 ‘나스타알리크의 완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스타알리크가 가진 또 하나의 가능성이 드러났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시는 화면 위에서 어떻게 형태를 얻는가?
이 관계를 더 정확히 보기 위해 몇 가지 서예 용어가 도움이 된다.
페르시아 시의 한 베이트(beyt)는 보통 두 개의 메스라(mesra'), 즉 반구절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서예에서 메스라는 반드시 하나의 완전한 시각적 행과 일치하지 않는다.
화면의 크기, 단어의 길이, 펜의 크기에 따라 필사자나 서예가는 반구절을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다.
쿠르시(kursi)는 한 행 안에서 글자와 단어가 자리 잡는 가상의 기준선이다.
나스타알리크에서 이 선은 반드시 수평일 필요가 없다. 단어는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일 수 있고, 행은 기울거나 움직이는 흐름을 가질 수 있다.
카시다(kashida)는 일부 글자와 연결 부분을 길게 늘이는 획이다.
두 글씨 영역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거나, 행을 더 길게 만들거나, 밀집된 글씨 덩어리와 빈 공간 사이에 관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카시다가 반드시 시의 의미적 멈춤이나 강조와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단어 자체의 형태, 서예 규칙, 화면 구성 역시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준다.
사바드(savad)와 바야즈(bayaz)도 마찬가지다.
사바드는 화면의 글씨가 쓰인 검은 부분이고, 바야즈는 그 사이와 주변의 빈 공간이다.
바야즈는 쓸모없는 공간이 아니다. 글씨가 보일 수 있도록 하고, 서로 다른 부분 사이의 관계를 조절한다.
시의 운율을 글씨 형태에서 볼 수 있을까?
매우 매력적인 질문이다.
반복되는 글자, 카시다, 간격의 리듬을 보고 그것을 시의 운율과 직접 연결하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증거는 그런 직접적인 관계를 입증하지 않는다.
시의 운율은 음절의 연속과 언어 구조에서 만들어진다.
화면의 시각적 리듬은 반복, 간격, 굵기, 방향에서 만들어진다.
읽는 동안 두 리듬을 함께 경험할 수는 있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번역은 아니다.
단어의 의미를 해석할 때도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서예가가 어떤 단어를 더 길게 늘여 썼다면 구성 안에서 그 형태가 두드러질 수 있다. 그러나 별도의 근거 없이 그 단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예는 시를 경험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가?
서예는 시의 어휘적 의미를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마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더 크게 쓰인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한 행 주변의 빈 공간은 그 행을 다른 부분과 분리할 수 있다.
길게 뻗은 카시다는 시선을 화면 안에 머물게 하거나 두 영역을 연결할 수 있다.
필사본에서는 규칙적인 행이 대개 연속적인 읽기를 강화한다.
독립 작품에서는 시선의 순서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먼저 더 큰 행이나 더 어두운 부분을 본 뒤 시를 읽기 시작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독립 작품 속 시는 언어적 순서 외에도 공간적 존재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차이를 절대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필사본이 오직 ‘읽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독립 작품이 오직 ‘보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페르시아어를 읽지 못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페르시아어를 읽지 못하는 관람자도 여전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행의 방향, 펜 크기, 밀도, 빈 공간, 카시다, 글과 여백의 관계는 모두 보인다.
하지만 작품의 중요한 일부는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운율, 은유, 시인의 이름, 문학적 암시,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는 글씨 형태만으로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작품을 페르시아어를 읽지 못하는 관객에게 소개할 때는 번역과 텍스트 설명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가 정체성을 잃은 아름다운 시각 형식으로만 남을 위험이 있다.
시는 나스타알리크에 어떤 가능성을 주었는가?
지금까지는 주로 서예가 시의 제시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관계는 반대 방향에서도 작동했다.
시는 서예가에게 매우 유연한 재료를 제공했다.
한 베이트, 루바이, 또는 몇 줄의 선택된 시는 전체 디반을 필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 특성은 독립 서예 작품의 제작 가능성을 넓혔다.
서예가는 몇 줄을 선택하고 펜의 크기, 행의 수, 구성 방향, 빈 공간의 양에 대해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단어의 구조 자체도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한 구절에는 긴 단어와 많은 카시다, 비슷한 형태의 반복이 있을 수 있고, 다른 구절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질 수 있었다.
서예가는 매번 화면을 조직하는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시는 단순히 화면에 옮겨지는 내용이 아니었다.
시를 이루는 단어의 구조 자체가 서예가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시인의 이름과 서예가의 이름이 함께 놓일 때
독립 작품과 무라까에서는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되었다.
텍스트는 시인의 이름에서 문학적 권위를 얻을 수 있었고, 서예 작품은 서예가의 이름과 서명에서 또 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은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되고 새로운 테두리를 받아 다른 작품과 함께 배치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는 수집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하페즈, 사디 또는 다른 시인의 몇 구절이 독립된 단위로 선택되어 전체 디반과는 별개의 삶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변화는 시와 나스타알리크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시는 책에서 나와 독립적인 화면으로 이동했다.
나스타알리크가 쓴 것은 페르시아 시만이 아니었다
나스타알리크와 페르시아 시의 관계를 진지하게 본다면 그 한계도 함께 봐야 한다.
술탄 알리 마슈하디가 1499–1500년 헤라트에서 쓴 Divan of Mir ʿAli Shir Nava’i는 동부 튀르크계 문학어 가운데 하나인 차가타이어로 쓰였다.

Divan of Mir ʿAli Shir Nava’i, Sultan Ali Mashhadi, 1499–1500, Herat,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 작품은 페르시아 시와 깊은 관계를 맺은 바로 그 나스타알리크가 같은 문화 환경에서 다른 언어의 시에도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꾸란 구절과 하디스 텍스트를 담은 수많은 작품 역시 같은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사실이 페르시아어의 중요성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관계를 본질적이고 배타적인 것으로 볼 수 없게 한다.
헤라트와 부하라에서 인도까지
나스타알리크의 역사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이어졌다.
미르 알리 헤라비는 헤라트, 마슈하드, 부하라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과 같은 전통의 다른 대가들의 작품은 이후 무굴 인도의 컬렉션에도 수집되었다.
하지만 인도는 이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작품을 보관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무굴 문화권 내부에서도 서예가들이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무함마드 후세인 카티브가 한 사례다. 16세기 말 그의 작품에서는 아미르 샤히의 시구가 장식된 화면에 비스듬히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이란 작품의 이동’이 아니다.
나스타알리크가 새로운 환경에서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 아대륙에서의 나스타알리크 확산을 ‘이란의 영향’이라는 일반적 표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예술가의 이동, 교육, 궁정 후원, 작품의 유통, 현지 제작, 수집 전통 모두가 이 역사에 참여했다.
아직도 이어지는 관계
인쇄와 디지털 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서예는 더 이상 시를 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스타알리크와 페르시아 시의 관계는 계속된다.
오늘날 한 구절은 서예 작품, 책 표지, 포스터, 전시 작품,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나타날 수 있다.
많은 경우 몇 줄의 선택된 시가 전체 디반의 필사를 대신한다.
새로운 미디어는 관객의 성격도 바꾸었다.
과거에는 주로 페르시아어 문화권 안에서 보이던 작품이 오늘날에는 시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 앞에 몇 초 만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를 제대로 소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시인의 이름, 페르시아어 원문, 명확한 번역이 함께 있으면 관객은 단지 형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텍스트를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페르시아 시와 나스타알리크: 시간 속에서 형성된 관계
나스타알리크는 페르시아 시를 쓰고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어떤 신비롭거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은 아니었다.
여러 역사가 함께 만나 이 관계를 만들었다.
페르시아 문학의 성장과 권위, 운문 필사본의 제작, 도서관과 궁정의 후원, 필사자 교육, 서적 제작 공방, 그리고 이후 독립 작품과 무라까의 확산이 이 관계가 지속될 조건을 만들었다.
나스타알리크 자체에도 시를 조직하는 데 유용한 가능성이 있었다. 단어 높이의 변화, 카시다, 크기의 차이, 사바드와 바야즈의 관계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시의 운율이나 의미를 직접 번역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시 역시 나스타알리크에 실험할 가능성을 제공했다.
선택된 시구와 작품, 다양한 단어와 문학 형식은 매번 펜 크기, 간격, 행, 화면 구성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서예가의 손에서 시는 단지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다시 조직되었다.
그리고 나스타알리크는 시를 단지 더 아름답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시를 보고 마주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만들어 냈다.
아마 그래서 이 동행이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체와 시가 처음부터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서로에게 반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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